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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할 길갈(수 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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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가이버 작성일14-03-30 15:08 조회7,5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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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4:1-14>                          우리가 기억해야 할 길갈                              주일예배(2.16)


  가끔 깜빡깜빡 건망증이 있는 친구에게 간만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친구야... 잘 지내냐?" 전화를 받은 그 친구는 허둥대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야... 쫌 있다 통화하자. 나 핸드폰 잃어버린 것 같아." 자기가 지금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고 있으면서 핸드폰을 찾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경찬이를 낳고 얼마 안 되서 가족이 함께 볼링장에 간적이 있습니다. 경찬이를 눕혀 놓고 볼링을 치는데, 칭얼대며 울어서 아내는 경찬이를 업고 볼링을 쳤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갑자기 경찬이가 누웠던 자리를 보고 없으니까 순간 경찬이가 어디 갔는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경찬이를 업고 말입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저도 순간 같이 찾았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해야합니다.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 집주소 등...인도네시아에서 살다보니 잊어먹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계절과 시간에 대한 감각, 나이, 변화에 대한 미감함 등...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망각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기억 자체를 잃어버리는 '완전 망각'과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뇌에 저장되어 있지만 인출이 되지 않는 '유실 망각'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에빙하우스는 망각에 대하여 연구하여 망각 곡선을 만들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학습한 지 20분이 지나면 42%의 기억이 사라지고, 한 시간 후에는 56%, 하루가 지나면 66%, 일주일 후에는 75%, 한 달 후에는 80-90% 이상을 잊게 된다고 합니다. 새로운 단어가 영구 기억 단계로 가려면 특별한 자극이 없는 경우 각기 다른 상황에서 15회 정도의 반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복습의 중요성)
  그래서 기억을 잘하려면 한 시간 내에 다시 외우면 하루 동안 기억이 지속되고 , 하루 지난 후 다시 외우면 일주일 동안, 일주일 후에 다시 외우면 한 달, 한 달 후에 다시 외우면 6개월, 6개월 정도 기억이 지속되면 장기 기억 상태에 접어들고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잠깐 회상만 해도 영구 기억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기억은 관심을 가져야, 절박해야, 재미있어야, 강하게 입력해야, 기억하려고 해야 잘 기억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철철 넘치는 요단강을 가르셨습니다. 흘러내리던 요단 강물이 30킬로미터나 역류해서 벽처럼 쌓였습니다. 사해 쪽으로 흐르던 물은 다 빠져나가고 강바닥이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2백 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마른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기적, 순종의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우연히 어쩌다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마자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강이 도로 범람했습니다. 그것은 확실한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단강의 기적을 이루신 후에 특별 조치를 하셨습니다.
1)본문 2-3절 말씀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첫째는 이스라엘 12지파의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12명이 요단 강 가운데서 돌 12개를 취하여 길갈에 세우게 하셨습니다.
  2)9절 말씀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둘째는 또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요단 강 가운데에도 12개의 돌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요단강의 12돌과 길갈의 12돌은 무슨 의미가 있었습니까?
  6-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길갈의 12돌과 요단강의 12돌은 말하자면 기념석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통해서 요단강을 가르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기념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과 지도자 모세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단강을 가르셨다는 것을 대대로 기억하고 감사하는 기념석입니다. 당대만이 아니라, 후대도 기념하는 기념석입니다. 자자손손 대를 이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게 하는 기념석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길갈에 있는 기념석은 눈에 보이니까 의미가 있습니다. 후손들이 "아버지, 저 돌들이 왜 저기 있어요?"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강 속에 있는 기념석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길갈의 보이는 돌들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요단 강물 속의 보이지 않는 돌들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돌들은 말을 못하지만, 사람들은 돌들을 통해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보이는 돌들에 대해서 질문할 때에 부모는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돌들은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단강을 가르셨다는 표징이야. 여기 길갈에만 12돌이 있는 것이 아니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요단 강물 속에도 12돌을 세웠어. 하나님이 이루신 기적이 그만큼 분명했던 거야.“
  우리가 살면서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부모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
 
  요단강의 기적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1)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셨지만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표를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를 통해 요단강을 가르신 이후에는 이것을 기념하는 12돌은 세우게 하심으로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견고히 해 주셨습니다.
  2)요단강의 기적은 또한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24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수 5장 1절을 보면, 당시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요단강을 가른 사건을 듣고 너무 놀라 정신을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요단강의 기적은 후손들이 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24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물려주는 작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한 가정만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지파별로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대로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때때로 보이는 표징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떼시고 축사하신 후에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식후에 또 잔을 가지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1:24-25). 예수님은 성찬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기시고 피 흘리신 것을 기념하고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1:26). 성찬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도록 하는 기념 만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두고 두고 기억해야 합니다. 병에 걸리면 당장 "하나님, 병만 고쳐주시면 정말 잘 믿겠습니다."고 해 놓고, 병이 낫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 안 됩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홍수에서 건져주신 주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의 대가 끊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호세아 13: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7-8절을 보면 “7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에 하나님은 사자나 표범처럼 그들을 찢으심으로써 그들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에 우리의 건강과 자녀와 생업과 사업을 찢으셔서, 기어이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짓인 것입니다.
  말틴 루터와 존 칼빈, 존 웨슬레 시대에 영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번창하던 유럽이 이제는 하나님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유럽은 지금 무서운 속도로 기독교 신앙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유럽 인구의 72.2%가 문화적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4.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독일 대학의 조사에 의하면 3만 5000개 독일교회 중 3분의 1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1998년 12월 14일 짐바브웨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조지 캐리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는 "우리 영국교회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습니다."(The Church is bleeding to death")고 하면서 기도와 도움을 간청했습니다. 영국은 지난 30년 동안 9,000개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도 매 주 평균 4개 교회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YMCA를 섬기시는 분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눈물의 고백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을 합니다. 중,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크리스찬이라고 해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약하신 대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에 하나님이 사자와 표범처럼 찢어버리시는 모습이 유럽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유럽이 경제적으로도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점점 열정을 잃어가서 이슬람으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길갈의 뜻은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신 곳”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길갈은 ‘굴러간다’는 의미와 ‘둥근 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열두 돌을 세운 것은 그동안의 모든 근심과 광야의 어려움이 다 굴러가고 새로운 땅에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수 백 년 동안 노예로 살았던 애굽 땅, 곧 한과 절망과 고통으로 얼룩졌던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땅, 소망과 기회의 땅으로 오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과거의 노예근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길갈은 그들이 자꾸 되돌아와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영적인 기념비, 영적인 충전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의 뒷이야기를 보면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3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합니다. 이 전쟁을 치러가는 과정을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생생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투에 승리를 하건, 패배를 하건, 그 때 마다 반드시 다시 돌아간 곳이 바로 길갈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계획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쉼도 이곳에서 얻었으며, 재충전도 여기서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길갈에 가나안 정복을 향한 첫 발을 디딘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서 사무엘은 해마다 길갈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또 사울 왕을 세울 때에도 길갈로 가라고 합니다. 엘리야, 엘리사 시대에는 선지자 학교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셔서 최초로 가나안 정복을 향한 첫 걸음을 믿음으로 옮겨 요단강을 건넜던 길갈이 그들의 영적인 고향이요, 충전소요, 힘을 회복하는 안식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 세워진 열두 돌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요단을 건넜지 하면서 영적인 충전을 받고 첫 사랑을 회복하고 다시 옳은 길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길갈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위기가 닥치고 영적으로 침체되었을 때 돌아가야 할 우리의 길갈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에게 신앙생활에 위기가 닥치고 세상 앞에 타협과 변질의 위험 앞에 직면했을 때 돌아갈 길갈을 가지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구원 받아 첫 사랑을 간직했던 그 길갈입니다. 
  그 길갈은 어디여야 합니까? 우리가 돌아가 다시 원리를 세우고 무너진 삶을 회복해야할 우리의 길갈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입니다. 말씀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이 치열한 영적 전쟁의 한 복판에서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승리했을 때 늘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황의 시간이 길어집니다. 우리의 길갈! 우리가 기억하고 돌아가야 할 거룩한 장소, 우리가 마음 놓고 기대어도 좋은 유일한 우리의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요단강의 기억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념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살다가 삶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고 유혹이 찾아올 때 우리는 우리의 길갈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을 사로잡아 십자가에 던져야 합니다. 움켜쥐고 싶은 마음, 높이지고 이름을 내고 싶은 마음을 그 길갈에서 다시 십자가의 정신으로 회복하고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던 “길갈”이 있을 겁니다. 그 길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그리고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때, 인생에 회의를 느낄 때, 깊은 좌절과 낙심이 찾아올 때, 길갈을 기억하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길갈”을 거꾸로 하면 “갈 길”이 됩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길이 바로 길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많이 기억할수록 우리는 영적으로 부요해 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과거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과거에 은혜를 베푸어주신 하나님께서는 현재와 미래에도 은혜를 베푸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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