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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전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성서적 비젼을 일깨우는 담임목사님의 귀한 말씀을 공유합니다

2020/02/02(주일) 우연히에 담긴 이중적 의미(룻2:1~8/유호종목사)

2020.03.08 17:01

hojong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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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2장 1~ 8절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설 교 말 씀
F2
우리는 여러 확률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확률이 맞아 떨어지면,
“우연히” 일이 일어났다고 얘기합니다.

예를 들면, 로또에 “우연히” 맞아 떨어졌다고 얘기합니다.
이렇듯이, “우연히”는 확률에 따른 어쩌다가 생기는 우연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단어는 하나님을 부정할 때 쓰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절에 “우연히”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룻이 보아스 밭으로 확률에 따른 우연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그래도 성경이라면, 하나님께서 이끄셨다고 기록되어져야 하는데,
“우연히”, 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할 때 쓰이는 단어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룻을 보아스 밭으로, 하나님이 이끄셨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우연히”, 라는 단어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F3
그 이유는 “우연히”, 라는 단어에는 “이중적 의미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 하나는 “확률로서의 우연”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연 법칙대로 어떻게 흘러가다 보니,
확률이 맞아 떨어져 생긴 사건에 사용 되는 의미입니다.

비신자들이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또 한 가지 의미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로서의 우연”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힘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만 일어난 사건에 사용 되는 의미입니다.

신자들이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우연히”에 담긴 의미 중에서
“하나님의 섭리로서의 우연”이라는 의미로
3절 말씀에 하나님은 기록하셨던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3절에 기록 된 “우연히”라는 단어는 인간의 힘을 제거한 가장 신앙적인 단어입니다.
가장 하나님의 섭리를 잘 표현한 단어입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시기 원합니다.

[적용] 지금 우리가 여기 발리한인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3절에 기록 된 의미대로 “우연히” 일어난 일입니다.
내가 스스로 온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도,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도,
지금 함께 신앙생활 하는 교우들도,
3절에 기록 된 의미대로 “우연히” 일어난 일입니다.
내가 스스로 이룬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를 3절에 기록 된 “우연히”라는 단어처럼,
그 인생을, 그 만남을, 그 비전을 이끌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때나, “우연히”의 역사를 발하시지 않습니다.
믿는 자가 어떻게 할 때, “우연히”의 역사를 발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믿는 자가 어떻게 할 때,
“우연히”의 역사를 적용시켜주시겠습니까?

F4
첫째, 노력 할 때, “우연히”의 역사를 적용시켜주십니다.

가만히 있는 자에게 “우연히”의 역사를 발하시지 않습니다.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자에게 “우연히”의 역사를 발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노력하는 자에게 “우연히”의 역사를 발하십니다.

2절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내가 밭으로 가서 … 이삭을 줍겠나이다”, 라고 건의를 하고 있습니다.

룻이 하겠다는 일은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1) 떨어진 이삭을 줍겠다는 거라서, 자리싸움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2) 땅 주인에 따라서 떨어진 이삭 까지도 뺏어가기 때문입니다.
3) 하루 종일 구부려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려운 일이지만,
룻은 어떻게든 인생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어떻게든 노력하는 룻에게 3절에 기록 된 대로, 하나님은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적용] 이처럼, 하나님은 노력하는 자를 선한 길로 이끌어주십니다.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만큼의 값을 제공해주십니다.
땀 흘린 만큼 삯을 받도록, “우연히”의 역사를 발현해주십니다.

만약, 룻이 힘들다고, 이삭 줍는 일을 안 했다면,
“우연히”의 역사를 체험치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힘들다고, 뽕나무를 심어놓지 않았다면,
삭개오는 그 뽕나무를 올라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괴롭다고, 인생을 자포자기 했다면,
요셉을 이끄시는 “우연히”의 역사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처럼, 어려운 일이어도, 힘든 일이어도, 일단, 룻처럼 노력하며
전진해 나갈 때에, “우연히”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예화(1)] 노력하는 룻에게 “우연히”의 역사로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1) 떨어진 이삭을 줍겠다는 거라서, 자리싸움이 치열하지만,
“우연히” 신실한 신앙인 보아스를 만나서 해결 되었습니다.

2) 땅 주인에 따라서 떨어진 이삭 까지도 뺏어가지만,
“우연히” 배려가 많은 신앙인 보아스를 만나서 해결 되었습니다.

3) 하루 종일 구부려 일해야 하지만,
“우연히” 쉴 곳이 있어서 해결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력하는 자에게 생긴 문제들을 “우연히”의 역사를
발하셔서 하나 씩 해결해주셨습니다.

[적용] 하나님은 노력하는 자의 문제를 “우연히”의 역사로
해결해주십니다.

믿지 않는 자가 볼 때는 확률로 맞아 떨어진 해결이지만,
믿는 자가 볼 때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해결입니다.

힘든 일 있어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 있어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노력에 “우연히”라는 하나님의 섭리가 발현 되어,
문제들이 해결 될 것입니다.

끝까지 노력해서 “우연히”의 역사로 문제해결을 받았던,
룻처럼, 우리도 끝까지 노력할 때, 문제 해결의 역사를
“우연히” 받게 될 줄 믿습니다.
——————————————————————-

둘째, 하나님을 의식 할 때, “우연히”의 역사를 적용시켜주십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히”의 역사 안에서,
룻이 자신의 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보아스가 하나님을 의식했는지, 4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가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라면서
자신의 일꾼들에게 평강의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 안하는 사람이면, 이렇게 인사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인사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연히”의 역사 안에서 룻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적용] 따라서 우리가 적용할 점은,
하나님과 언제나 동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의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식하면,
보아스에게 룻을 보내주셨듯이, 룻과 같은 선생님을 우리에게 붙여주실 것입니다.
보아스에게 룻을 보내주셨듯이, 룻과 같은 친구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동행하시는 가운데,
노력하는 룻을 보아스에게 보내주신 “우연히”의 섭리를 체험하시기를 원합니다.

결론
[예화(2)] “우연히”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신 성도님들이 많이 계실 줄로 압니다.

룻처럼, 노력하던 중에 경험한 “우연히”라는 섭리,
보아스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던 중에 경험한 “우연히”라는 섭리,
를 많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저도 “우연히”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험하면, 믿음이 약해서 인지,
‘설마, 설마…’, ‘그럴 리가..’라는 불신앙이 앞섰습니다.
제가 기도했는데, 누구의 병이 낫는다던지,
불임 가정에 태중의 자녀가 생긴다던지,
비신자가 신자가 되는 일이 생기면,
“설마.. 설마..”가 앞섰습니다.

그런데, 그 “설마… 설마”, “그럴 리가”가 점점 쌓여가니,
그것은 결국, “우연히”라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김형준 목사님의 『지금 선택해야 할 것들』 저서를 읽으니,
이렇게 표현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날 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일 속에 하나님의 퍼즐은 무엇이었을까요? … 조각났던 기억들이 하나로 맞춰지면서 제 삶이 정리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유 없는 고통은 없습니다.”

이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 삶에 생기는 “설마 … 설마”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퍼즐처럼 맞춰져 갈 때,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완벽히
들여다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나”의 삶에 펼쳐지는 “우연히”의 역사를
확률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받으셔서, 훗날 퍼즐이 맞춰졌을 때,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우리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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