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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전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성서적 비젼을 일깨우는 담임목사님의 귀한 말씀을 공유합니다

12/1(주일) 사랑 고백의 유익(요21:15~23/유호종목사)

2019.12.20 21:46

hojong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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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21:15~23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F2
베드로는 배신자입니다.

베드로는 “나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3번 배신의 고백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표현 되는 숫자 3은 완전수입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을 완전히 배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완전히 배신한 베드로에게 사랑 고백을 요청하십니다.

15절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16절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7절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3번이나 사랑 고백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상합니다.
배신했는데, 사랑 고백을 요청하십니다.

제 생각에는 오히려,
“앞으로 배신하지 마라. 그러면 안 된다.”라고, 교육해야 합니다.

배신하지 말라고, 엄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랑 고백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완전히 배신한 베드로에게 “앞으로 배신하지 마라.”라는 교육이 아니라,
사랑 고백을 요구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F3
그 이유를 17절을 살펴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7절 말씀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3번째 사랑 고백을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완전한 사랑 고백을 베드로에게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 요구에 합당하게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렇게 최종적인 사랑 고백을 하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17절 하반절 말씀처럼,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성도들을 돌보라는 사명입니다.
교회를 돌보라는 사명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라는 사명입니다.

이로 보건대,
사랑 고백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랑 고백을 요청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믿음으로 깨달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해서 사랑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만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는
사명 감당할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 부지런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는
사명 감당할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해 주신대로,
사랑 고백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나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향한 사랑 고백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사명자로 살았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명자로 평생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사랑 고백하는
성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명을 이어가겠습니까?

F4
이를 본문 통해 두 가지로 살펴 볼 때,
충성 된 성도로 하나님께 칭찬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첫째, 예수님께 사랑 고백하는 성도는
원치 않는 길로 가더라도, 사명을 이어갑니다.

18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젊어서는” 베드로가 어떻게 다녔다고 하십니까?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고 합니다.

사랑 고백이 약했던 베드로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쁨 보다는,
자기에게 기쁨이 되는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기도도 자기가 하고 싶을 때하고,
봉사도 자기가 하고 싶을 때하고,
믿음을 가졌지만,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고백을 한 후 베드로는 어떤 사명을 받습니까?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어떤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자기에게 기쁨이 되는 사명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적용] 베드로처럼, 사랑 고백하셔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시기를 원합니다.

지금 나는 내 생각이 앞서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보다는 내 만족과 유익이 앞서고,
하나님보다는 내 생각, 내 고집이 앞서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분은, 베드로처럼, 예수님께 사랑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화(1)] 제가 발리에 온 지 6월5일에 부임했으니, 이제 약6개월
남짓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발리라는 땅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목회사역, 선교사역을 감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한국 목회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목사로 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몇 개월이지만, 힘들긴, 힘들었습니다.
(물론, 오지에 계시는 선교사님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제가 부족한 게 많아서였습니다.
언어능력도 부족하고, 경건 능력도 부족하고, 대인 관계도 부족하고,
행정적, 법적 업무능력도 부족하고, 목회사역, 선교사역 능력도 부족했습니다.

18절 말씀처럼,
제가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온 것입니다.
제 생각에 제가 있을 곳은 안정적인 한국의 목회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원망이 아니라, 감사가 나오고,
불평이 아니라, 소망을 가지면서 목회사명, 선교사명을 이어 왔고,
계속 이어가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예수님께 사랑 고백만큼은 잘하기 때문입니다.

[적용] 사역하다가 제 자신의 부족함이 보여도, 예수님 사랑합니다.
간혹 믿음 없어서 낙심 될 때도,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플 때도, 예수님 사랑합니다.
부족한 능력으로 교우들을 잘 이끌지 못해도, 예수님 사랑합니다.

고백하면서 나아가니, 그래도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명을 이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나”에게 적용한다면,
지금 우리 가정이 원치 않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까?
지금 내 인생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원망이 아니라, 감사가 나오고, 불평이 아니라, 찬송이 나오려면,
예수님께 사랑 고백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 고백하실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명을 계속 이어가시게 될 줄 믿습니다.
————————————————————————-

둘째, 예수님께 사랑 고백하는 성도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사명을 이어갑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항상 선두에 서고 싶어 했던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무척이나, 의식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21절처럼, 질문하게 됩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자기는 원치 않는 곳으로 가는데,
사도 요한은 어느 길로 갈지 여쭤보았던 것입니다.

“나 보다 더 잘난 인생사는 게 아닐까?”라는 묘한 피해의식이 생겼던 것입니다.

자신은 좌천 되는 것 같고, 사도 요한은 승승장구 할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22절처럼 말씀해주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사람 의식하지 말고, 세상 의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적용]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랑 고백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적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 의식할 때 있습니다.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볼까, 라는 불안함이 있을 때 있습니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더 못 나보이진 않을까, 라는 피해의식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있습니다.

이럴 때, 주님은 22절처럼,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나를 따르라.”
사람보다 “나를 따르렴.”, 세상 법칙보다 “나를 따르렴.”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는 예수님만 따르며, 바라보며,
내게 주신 사명 감당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만 따르며, 바라보며 사명 감당하려면,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사랑 고백해야 합니다.

[예화(2)] “알랭드 보통”이라는 현대 철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어떨 때,
불안함을 갖는지를 이렇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사람은 나와 LEVEL이 비슷한 부류가 나보다 더 잘 나갈 때, 나보다 더 앞서 나갈 때, 나보다 더 인정 받을 때, 불안함을 느낍니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촌이 땅 사면, 나는 뭔가 싶어서 불안하다 보니, 배가 아픕니다.
옆집 자녀가 내 자녀보다 앞서면, 자녀를 내가 어떻게 키웠나 싶어 불안하다 보니, 속상합니다.

이런 불안함이 베드로에게도 있었고,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적용] 이 때, 예수님은 22절처럼, 불안함을 갖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 나만 바라보렴.

불안함을 갖는 베드로에게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우리 가정만 왜 이럴까, 내 자녀만 왜 이럴까,
내 인생만 왜 이럴까, 라고 생각하시며 불안함이 가득한 분 계신다면,

예수님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신 후에
예수님 손잡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시기를 원합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곳으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결론
예수님께 사랑 고백하는
성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명을 이어가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께 사랑 고백하는 성도는
원치 않는 길로 가더라도, 사명을 이어갑니다.

둘째, 예수님께 사랑 고백하는 성도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사명을 이어갑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하루에 3번 고백하셔서 사명을 계속 이어갈 힘 얻으시기를 원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를 고백하셔서 사명을 계속 이어갈 능력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 고백의 유익”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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